창덕궁 관람을 마친 우리는, 자연스럽게 옆에 위치한 창경궁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봄기운이 완연한 날씨 덕분에 걷는 동안 발끝마저 가벼웠다. 창경궁은 본래 세종대왕의 아들 문종이 어머니와 왕실 여인들의 안락한 생활을 위해 지은 궁궐로, 규모는 크지 않지만 아늑하고 조용한 분위기가 인상적이었다.
정문인 홍화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서자, 단아하게 꾸며진 궁궐 공간이 펼쳐졌다. 명정전까지 이어지는 길은 돌바닥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고, 그 주변으로는 키 큰 소나무들이 부드러운 그늘을 드리우고 있었다. 봄바람에 나뭇잎들이 살랑거리고, 나무 사이로 스며드는 햇살이 길을 반짝이게 했다.
창경궁의 중심인 명정전은 단정하고 고요했다. 붉은 기둥과 푸른 단청은 시간이 지나도 그 위엄을 잃지 않았고, 주변 마당에서는 때마침 어린아이들이 소풍을 온 듯, 환하게 웃는 소리가 멀리서 들려왔다. 명정전 앞 너른 마당에 서니, 수백 년 전 왕이 신하들을 맞이하던 장면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명정전을 뒤로하고 우리는 경춘전, 통명전, 환경전 등을 둘러보았다. 건물들은 모두 소박하고 인간적인 크기였다. 각각의 전각 사이로 이어진 작은 길들을 따라 걸을 때마다, 길가에는 다양한 나무와 봄꽃들이 우리를 반겨주었다. 진달래와 개나리, 벚꽃이 만개한 정원은 환상적이었다. 꽃잎이 살짝 떨어져 바닥에 내려앉은 모습조차도 그림 같았다.
창경궁 안은 그야말로 하나의 살아있는 정원 같았다. 큰 나무들은 오랜 세월을 견뎌온 듯 단단하고 웅장했으며, 그 사이사이에는 작은 화단이 조성되어 있어, 형형색색의 꽃들이 경쟁하듯 아름다움을 뽐냈다. 길을 걷다 보면 은은한 꽃향기가 불쑥 코끝을 스쳤고, 나무 사이로 부드럽게 불어오는 바람은 마음까지 맑게 씻어주는 듯했다.
특히 인상 깊었던 곳은 대온실이었다. 1909년에 세워진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온실은 고궁 안에서는 다소 이질적일 수도 있었지만, 의외로 창경궁과 잘 어우러져 있었다. 하얀 철골과 유리로 지어진 대온실 안에는 열대식물들이 가득 자라고 있었다. 넓은 잎사귀와 이국적인 꽃들이 가득한 온실 안을 걷다 보니, 마치 다른 나라 정원에 초대받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온실을 나온 후, 다시 정원을 따라 천천히 걸었다. 크고 작은 연못 주변에는 버드나무가 늘어져 부드러운 곡선을 만들고 있었고, 작은 다리를 건너며 흐르는 물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연못 가장자리에는 수선화가 노랗게 피어 있었고, 벚꽃잎이 바람에 날리며 작은 꽃비를 만들어냈다. 모든 풍경이 조용히, 그러나 깊게 마음속으로 스며들었다.
창경궁 곳곳을 둘러보며 느낀 점은, 이곳이 단순한 궁궐이 아니라, 자연과 사람이 함께 살아가는 공간이었다는 것이다. 무거운 역사의 흔적 속에서도 창경궁은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었다. 나무 한 그루, 꽃 한 송이, 돌 하나까지도 이곳에서 긴 세월을 견뎌오며 방문객들에게 따스한 위로를 전해주고 있었다.
점점 해가 기울기 시작하면서 창경궁은 또 다른 모습으로 변했다. 저녁 햇살에 물든 궁궐과 정원은 마치 금빛으로 물든 듯했다. 나무 그림자가 길게 늘어지고, 바람에 흔들리는 꽃들이 환상적인 장면을 만들어냈다. 우리는 말없이 그 아름다움을 바라보았다.
창경궁을 거닐며 느낀 봄날의 풍경은 단순히 아름답다기보다는, 깊은 울림을 주었다. 화려하지 않지만 소박하고 따뜻한, 그래서 더 오랫동안 마음에 남는 그런 시간이다. 서기관 동기들과 함께한 이 시간은 소중한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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